어제는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이다. 우리의 눈에는 유난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베트남에서 여성의 날은 확실히 그 무게가 다르다. 특히 베트남 여성과 교제 중이거나 배우자를 둔 남성들이라면 3월 8일(국제 여성의 날), 10월 20일(베트남 여성의 날), 그리고 그녀의 생일은 절대 잊어선 안 될 ‘연중 3대 기념일’로 통한다.
베트남에서 여성의 날은 챙기는 것은 비단 개인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1년에 두 번, 매년 여성의 날이 다가오면 각 회사에는 여성 직원들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남성 직원들은 인증샷을 위한 전담 포토그래퍼를 자처하기도 한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국제 여성의 날이 일요일과 겹친 탓에 업무 종료 후 파티를 위한 각 회사의 예약으로, 시내 많은 식당들이 평일 이른 시간부터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는 등 분주한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대체 베트남은 언제부터 여성의 날을 이렇게 화려한 축제처럼 챙겼을까? 그 뿌리는 베트남의 치열했던 현대사와 깊게 맞닿아 있다. 1930년 베트남여성연맹 창설 이래,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여성의 날은 철저히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기념일에 가까웠다. 전장과 공장에서 헌신한 여성들에게 훈장을 표창하거나, 노조 단위로 모여 비누나 수건 같은 생필품을 나눠주는 소박하고 엄숙한 행사였다.
하지만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 이후 시장경제가 도입됨에 따라 1990년대부터 이 기념일은 차츰 상업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실용품 대신 꽃다발이 선물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외식 문화가 발달하며 식당을 찾는 발길도 늘었다. 여기에 2010년대 이후 신흥 중산층의 급증과 스마트폰의 보급, 소셜미디어(SNS)의 확산은 여성의 날을 압도적 스케일의 소비 축제로 폭발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와 자기 과시를 위한 온라인 인증샷 열풍이 결합하며 애꿎은(?) 남성들의 지갑 경쟁에 불을 붙인 것이다.
실제로 몇 년전부터는 여성의 날이면 지폐 수십 장을 꽃모양으로 엮어 만든 화려한 ‘돈꽃다발(Hoa Tien)’ 인증샷이 속속 등장하며 남성들을 더욱 괴롭게 만들고 있다. 베트남 최고액권 지폐인 50만 동짜리로 만든 꽃다발이 더욱 그렇다.
이 탄탄한 역사적 배경과 눈부신 경제 성장은 오늘날 여성을 타겟으로 하거나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발생하는 ‘여심(女心)경제’ 발전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여성들의 영향력은 상당한 편인데, 한국의 100대 기업 여성 임원 비율이 6~8%대 언저리에 머무는 반면, 베트남은 전체 기업 중 여성 오너 비율이 20%를 훌쩍 넘고 고위 임원 비율은 30%대에 육박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 가정을 건사해 온 모계 사회의 끈끈한 전통을 바탕으로, 시장 바닥부터 대기업 임원실까지 경제의 실질적인 지갑과 의사결정권을 강인한 여성들이 쥐고 있다. 이들을 향한 범사회적 헌사는 곧바로 거대한 내수 진작으로 이어진다.
여성의 날이면 화훼 업계뿐만 아니라 소매·서비스 업계 전반이 관련 판촉 행사를 강화하며 특수를 누린다. 꽃다발부터 여성들이 선호하는 화장품·주얼리 등 명품 브랜드의 선물 세트 매출은 큰 폭으로 뛰고, 호치민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야경이 보이는 루프탑 바는 한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테이블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심지어 시내 유명 호텔과 숙박업소들까지 빈 방을 찾기 어려울 정도니, 이 정도면 국가적인 경제 기념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매년 3월 8일과 10월 20일, 1년에 두 번있는 여성의 날이면 베트남 전역에서는 꽃배달에 나선 오토바이 기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덜컹이는 도로위 혹여나 비싼 꽃다발이 망가질까 노심초사하며, 거대한 꽃다발을 싣고 곡예하듯 달리는 오토바이 기사들.
그들이 배송하는 화려하고 값비싼 꽃다발들을 단순히 여성들의 허세만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아마 그것은 오랜 시간 베트남을 지탱해 온 여성들의 헌신에 대한 역사적 보답임과 동시에 위축된 내수 시장에 단비와 같은 이벤트가 아닐까.
출처 : 인사이드비나(https://www.insidevin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