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쌀국수다. 그러나 쌀국수는 단순한 국민 음식이 아니다. 그 한 그릇에는 베트남이 겪어온 식민의 시간, 분단과 전쟁, 이동과 정착, 그리고 지역마다 다른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하노이와 사이공, 남과 북의 쌀국수를 비교해 보면 베트남 사회의 두 얼굴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쌀국수의 시작은 20세기 초 하노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 전후 하노이의 생활상을 기록한 자료에는 이미 거리에서 쌀국수를 파는 노점의 모습이 등장한다. 북부 남딩 지방 노동자들이 국수에 국물을 말아 먹던 식습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이 무렵 하노이는 프랑스 식민지 행정의 중심지였고, 중국 상인과 이주민들도 밀집해 있던 도시였다. 쌀국수는 바로 이 세 문화가 교차하던 공간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인들이 소비하고 남긴 소고기 뼈, 중국계 이주민들이 가져온 국수 문화, 그리고 베트남인의 쌀 중심 식생활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국물 음식이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물소고기를 활용한 국물이었지만, 점차 소고기와 쌀면이 결합되며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 과정에서 쌀국수는 특정 민족의 음식이 아니라, 하노이라는 도시가 만들어낸 혼합의 산물이 되었다.
쌀국수라는 이름, ‘퍼’(phở)라는 발음의 기원 역시 이 혼합의 역사를 보여준다. 프랑스식 소고기 스튜 포토푀(pot-au-‘feu’)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실제로는 중국 남부 광둥어 계통의 쌀국수 명칭 ‘펀(粉)’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이 음식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프랑스의 식재료, 중국의 조리 개념, 베트남의 쌀 문화가 결합되면서 음식뿐 아니라 이름까지 자연스럽게 현지화된 셈이다. ‘퍼’라는 짧은 발음 속에는 식민지 하노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 문화적 혼합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1954년 제네바 협정 이후, 쌀국수의 운명은 베트남 현대사와 함께 크게 방향을 바꾼다. 북부 주민 약 100만 명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하노이식 쌀국수 역시 사이공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쌀국수는 그대로 머물지 않았다. 기후와 식재료, 그리고 남부 특유의 개방적인 식문화가 더해지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하노이의 쌀국수는 절제의 음식이다. 국물은 맑고 투명하며, 향신료 사용은 최소화된다. 파와 고수 외에는 별다른 얹는 재료가 없거나, 아예 아무것도 올리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고기는 한두 가지 부위로 제한하고, 면은 넓고 부드러워 국물의 맛을 해치지 않는다. 국물을 먼저 음미하고, 재료 하나하나의 균형을 느끼는 방식이다. 하노이 사람들에게 쌀국수는 아침을 여는 조용한 의식에 가깝다. 여기에 튀긴 밀가루 빵 꿔이(quẩy)를 국물에 적셔 먹는 풍경은 북부 일상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반면 사이공의 쌀국수는 풍요와 확장의 음식이다. 국물은 더 진하고 달큰하며, 향신료의 존재감이 분명하다. 숙주, 타이 바질, 각종 허브가 한 접시 가득 곁들여지고, 라임과 고추, 소스는 먹는 이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더해진다. 고기 역시 여러 부위를 한 그릇에 담아내며, 씹는 맛과 향의 층위가 복합적이다. 사이공에서 쌀국수는 각자가 완성하는 음식이다. 그릇 위에서 개인의 취향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조리법의 차이가 아니다. 북부의 비교적 선선한 기후와 제한된 식재료 환경, 오랜 질서 속에서 형성된 절제의 미학이 하노이 쌀국수를 만들었다면, 남부의 열대 기후와 풍부한 허브, 개방적인 상업 도시의 성격은 사이공 쌀국수를 키워냈다. 하노이의 쌀국수가 균형과 절도를 중시하는 음식이라면, 사이공의 쌀국수는 다양성과 선택을 존중하는 음식이다.
최근 들어 쌀국수는 또 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길거리 음식이던 쌀국수가 미식의 세계로 진입하며 새로운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통을 지켜온 노포(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식당)부터, 쌀국수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고급요리 중심의 파인다이닝까지 등장했다. 전통을 지키는 방식도, 전통을 확장하는 방식도 모두 쌀국수라는 이름 아래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형의 정도가 아니라, 그 변형이 어디에서 출발했는가이다. 하노이든 사이공이든, 쌀국수는 늘 자신이 서 있던 땅의 삶을 반영해 왔다. 그래서 쌀국수 논쟁은 맛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어떻게 한 식탁 위에 올라왔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의 문제다.
쌀국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한 그릇의 국물 안에는 베트남이 걸어온 시간과, 지금도 선택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 함께 끓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