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프리미엄” 환상만으로는 부족하다… 1억 스마트폰 소비자를 움직이는 ‘콘텐츠 전환 구조’가 성패 가른다
틱톡샵·쇼피가 바꾼 베트남 도소매 시장, 한국 기업은 MCN을 광고대행사가 아닌 ‘디지털 유통 파트너’로 봐야 한다

[한국관세신문=정도현 기자 | 호치민·하노이]
베트남 도소매 유통 시장의 진입 공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 한국 소비재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할 때 일반적으로 따르던 로드맵은 비교적 분명했다. 식약처 인증과 공식 통관을 마친 뒤, 안남마켓·윈마트 등 대형 유통 채널에 입점하고, 공중파 TV 광고와 옥외 광고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뒤 로컬 대리점망을 확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베트남 소비재 시장에서 구매 전환을 일으키는 핵심 에너지는 더 이상 TV 브라운관에서 나오지 않는다. 소비자의 시선은 손바닥 위 스마트폰 화면으로 이동했고, 구매 결정은 짧은 영상과 라이브 방송, 인플루언서의 실사용 후기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호치민 1군 타카시마야 백화점의 한 K-뷰티 매장 관계자는 “2030대 젊은 고객 중 TV 광고를 보고 왔다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오히려 틱톡 뷰티 크리에이터의 짧은 리뷰 영상을 보여주며 ‘틱톡샵 가격과 매장 가격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프라인 매장은 이제 제품을 처음 알리는 공간이라기보다 온라인에서 본 제품을 직접 확인하는 체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이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핵심 인프라가 바로 MCN이다. MCN은 Multi-Channel Network의 약자로, 본래 유튜버·틱톡커 등 크리에이터를 관리하고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조직을 뜻했다. 그러나 베트남 시장에서 MCN은 단순한 인플루언서 기획사를 넘어섰다. 브랜드 포지셔닝, 현지화 콘텐츠 기획, 라이브커머스 운영, 플랫폼 입점 지원, 크리에이터 매칭, 판매 데이터 분석, 일부 CS·물류 연계까지 담당하는 ‘콘텐츠 기반 디지털 총판’으로 진화하고 있다.
1억 소비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TV가 아니라 SNS다
베트남 유통 시장의 디지털 전환 속도는 동남아시아에서도 빠른 편이다. 글로벌 디지털 통계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의 인터넷 이용자는 8,000만 명을 넘어섰고, 소셜미디어 이용자 역시 7,000만 명대 후반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젊은 인구 구조,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 모바일 결제와 전자상거래의 확산이 맞물리면서 소비자의 구매 경로가 오프라인 중심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전자상거래 매출에서도 확인된다. 베트남 전자상거래 분석기관 Metric.vn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쇼피, 틱톡샵, 라자다, 티키 등 주요 4대 이커머스 플랫폼의 총매출은 202조 동을 넘어섰다.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한 수치다. Momentum Works 등 시장 조사기관도 베트남 이커머스 시장의 연간 거래액이 이미 100억 달러대를 넘어섰다고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단순한 시장 규모가 아니라 매출의 질적 변화다. 과거 전자상거래가 검색형 쇼핑에 가까웠다면, 지금 베트남의 온라인 소비는 ‘발견형 구매’로 이동하고 있다. 소비자는 필요한 물건을 검색해서 사는 것뿐 아니라, 숏폼 영상과 라이브 방송을 보다가 제품을 발견하고 즉시 구매한다.
특히 틱톡샵의 성장은 베트남 유통 시장의 판도를 크게 흔들고 있다. 쇼피와 라자다가 가격 비교와 검색형 구매의 중심이라면, 틱톡샵은 콘텐츠와 구매를 하나의 화면 안에서 연결한다. 소비자는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보다가 제품을 클릭하고, 라이브 방송 중 할인 쿠폰과 사은품을 확인한 뒤 바로 결제한다. 이 구조를 설계하고 움직이는 주체가 바로 MCN이다.
공중파 광고는 ‘인지도’, MCN은 ‘구매 전환’을 만든다

공중파 TV 광고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기업, 금융, 통신, 자동차, 식음료 대형 브랜드에는 여전히 TV 광고가 대중적 신뢰와 인지도를 만드는 수단이다. 문제는 비용과 효율이다.
중소·중견 한국 소비재 기업이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면서 전국 단위 TV 광고를 집행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또한 TV 광고는 불특정 다수에게 브랜드를 노출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어떤 소비자가 광고를 보고 실제 구매했는지 추적하기 어렵다. 반면 MCN 기반 SNS 마케팅은 타깃을 세분화하고, 콘텐츠별 반응을 측정하며, 판매 링크를 통해 구매 전환까지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 소비자는 기업이 정제해 내놓는 일방적 광고보다 자신과 비슷한 크리에이터의 사용 후기와 실시간 소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화장품은 피부톤과 사용감을 보여주는 뷰티 크리에이터가, 식품은 조리 장면과 맛 평가를 보여주는 먹방·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가, 건강식품은 가족·육아·웰니스 콘텐츠와 결합될 때 구매 설득력이 높아진다.
특히 팔로워 수가 수백만 명인 메가 인플루언서보다 특정 카테고리에 강한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더 높은 구매 전환율을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베트남 시장에서는 “얼마나 유명한가”보다 “누가, 어떤 맥락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베트남 MCN은 광고회사가 아니라 ‘디지털 유통 파트너’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 MCN을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인식은 “MCN은 광고대행사”라는 생각이다. 베트남에서 경쟁력 있는 MCN은 단순히 영상을 만들어 주거나 인플루언서를 섭외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제품을 베트남 소비자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어떤 플랫폼에서 어떤 방식으로 팔아야 하는지 설계하는 유통 파트너에 가깝다.
예를 들어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베트남에 진출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거에는 백화점·마트 입점, 모델 광고, 오프라인 프로모션이 우선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베트남 소비자의 피부톤과 기후, 사용 습관에 맞춰 콘텐츠를 다시 만들고, 뷰티 크리에이터가 직접 사용감을 보여주며, 틱톡 라이브와 쇼피 공식몰을 연결해 첫 구매를 유도한 뒤 리뷰를 쌓아야 한다. 이후 오프라인 매장은 브랜드 신뢰와 체험을 강화하는 보조 채널로 작동한다.
식품도 마찬가지다. 한국식 상세페이지를 베트남어로 번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베트남 소비자는 조리법, 맛의 강도, 가족 식탁 활용도, 가격 대비 양, 배송 상태, 프로모션 혜택에 민감하다. 콘텐츠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건강식품은 더 조심스럽다. 효능 표현과 광고 규제를 지키면서도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MCN의 현지화 역량이 중요해진다.
베트남 MCN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

베트남에는 이미 여러 디지털 미디어·MCN 기업들이 성장해 있다. 이들은 단순한 크리에이터 네트워크를 넘어 브랜드 마케팅, 콘텐츠 제작, 플랫폼 운영, 커머스 전환까지 결합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Creatory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인플루언서 마케팅·콘텐츠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데이터 기반 크리에이터 매칭, 콘텐츠 기획, 브랜드 캠페인 운영에 강점을 갖고 있으며 K-뷰티, 라이프스타일, 웰니스 브랜드와의 협업 가능성이 높다.
POPS Worldwide는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에서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네트워크를 구축해 온 기업이다. 유튜브, 틱톡, 페이스북 등 멀티플랫폼 기반 콘텐츠 유통에 강점을 갖고 있으며, 대중성 있는 식품·유아용품·패션 브랜드와의 접점이 크다.
YeaH1 Group은 베트남의 대표적 미디어·디지털 그룹 중 하나다. 방송과 디지털 플랫폼을 모두 아우르는 미디어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으며, 대형 캠페인과 라이브커머스, 대중 소비재 확산에 강점을 보인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히 유명 MCN의 이름만 보고 선택해서는 안 된다. 제품군, 목표 소비층, 판매 플랫폼, 예산 구조, 물류·CS 역량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뷰티 브랜드에 강한 MCN, 식품 콘텐츠에 강한 MCN, 라이브커머스 운영에 강한 MCN은 서로 다를 수 있다.
한국 기업이 빠지기 쉬운 세 가지 착각
베트남 유통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한국 기업의 실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한국산 프리미엄이 있으니 올려두면 팔릴 것”이라는 착각이다. 한류는 베트남 소비자가 한국 제품에 관심을 갖게 하는 첫 문을 열어줄 수 있다. 그러나 구매 버튼을 누르게 하는 결정적 요인은 가격, 효용, 후기, 신뢰, 배송 경험이다. 시장에는 이미 중국산 저가 제품, 태국산 생활소비재, 베트남 로컬 브랜드가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받는 시대는 끝났다.
둘째, “팔로워 수가 많은 인플루언서를 쓰면 매출이 난다”는 착각이다. 100만 팔로워를 가진 연예인형 인플루언서가 제품 사진 한 장을 올리는 것보다, 3만 팔로워의 전문 크리에이터가 라이브 방송에서 1시간 동안 제품을 직접 사용하며 질문에 답하는 것이 더 높은 전환율을 만들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팔로워 수보다 콘텐츠 적합도와 신뢰도가 중요하다.
셋째, “한국 상세페이지를 번역하면 현지화가 끝난다”는 착각이다. 베트남 소비자는 긴 텍스트보다 짧은 영상, 실제 후기, 가격 혜택, 사은품, 배송 신뢰에 더 빠르게 반응한다. 한국식 브랜드 설명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 소비자의 구매 호흡에 맞춰 콘텐츠를 재창조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3대 실전 전략
앞으로 베트남 소비재 시장의 승자는 재고를 많이 확보한 기업이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 속 관심을 실제 매출로 전환할 수 있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업이 준비해야 할 실전 전략은 세 가지다.
첫째, MCN을 광고대행사가 아니라 콘텐츠 유통 파트너로 지정해야 한다. 영상 제작 단가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 MCN이 어떤 크리에이터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지, 판매 전환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틱톡샵·쇼피·라자다 운영 경험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고정 수수료와 판매성과 기반 인센티브를 결합한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콘텐츠·커머스·물류의 삼각 편대를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라이브커머스로 주문을 받아도 배송이 지연되거나 CS 응대가 늦어지면 브랜드 신뢰는 즉시 떨어진다. 틱톡샵·쇼피 공식몰 운영, 현지 풀필먼트, 반품·교환 대응, 베트남어 고객응대 체계를 마케팅 시작 전에 준비해야 한다.
셋째, 첫 구매 이후의 재구매 루프를 만들어야 한다. 1회성 라이브 특가 판매만으로는 브랜드가 남지 않는다. 첫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리뷰 작성, Zalo 커뮤니티 유입, 재구매 쿠폰, 세트 상품 제안, 정기구매 프로그램 등을 설계해야 한다. 베트남 시장에서 장기 생존하려면 ‘한 번 파는 구조’가 아니라 ‘반복 구매를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
결론: 제품은 통관으로 들어오지만, 소비자는 콘텐츠로 움직인다
베트남 유통 시장에서 제품은 공식 통관 절차를 거쳐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베트남 소비자의 마음과 지갑을 통과하는 열쇠는 결국 현지화된 콘텐츠다.
이제 베트남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기업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느 대형마트 매대에 입점할 것인가”만 물을 것이 아니라, “어느 플랫폼에서 어떤 크리에이터의 목소리로 첫 구매 경험을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베트남 도소매 유통의 새로운 관문은 더 이상 화려한 오프라인 매장이나 공중파 광고만이 아니다. 짧은 영상, 실시간 라이브 방송, 크리에이터의 신뢰, 그리고 그 뒤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판매 구조를 설계하는 MCN 기업과의 협업이 핵심이 되고 있다.
한국 제품에는 여전히 기회가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한국산 프리미엄”이라는 이름표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베트남 소비자의 언어로 설명하고, 현지 플랫폼의 문법으로 판매하며, 콘텐츠를 매출로 전환할 수 있는 기업에게 먼저 열린다.

■ 본 기사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한국계 MCN 회사인 크레아토리 이원기대표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