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수출입 7701억 달러로 역대 최대
수입 35.3% 급증하며 205억 달러 적자 전환
대미 흑자 1066억·대중 적자 1077억 달러
삼성, 품질·기술·데이터·지속가능성 새 기준 제시

[한국관세신문=정도현 기자|호치민.하노이]
베트남의 무역 규모가 다시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해 1~8월 상품 수출입액은 7701억4000만 달러(약 1078조원·1달러당 1400원 기준)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7% 증가한 것으로, 역대 1~8월 실적 가운데 가장 크다.
겉으로만 보면 베트남의 ‘세계의 공장’ 전략이 순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출보다 수입이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다. 수출의 80% 이상을 외국인직접투자(FDI) 기업이 담당하고 생산재가 전체 수입의 94%를 차지하는 구조도 그대로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업체 선정 기준을 가격 중심에서 품질·기술·데이터·지속가능성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했거나 현지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에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다. 저렴한 노동력과 낮은 납품단가만으로 베트남 공급망에 진입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의미다.
수출 22.4% 늘 때 수입은 35.3% 증가
베트남 재정부 산하 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1~8월 상품 수출액은 3748억4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2.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입액은 3953억 달러로 35.3% 늘었다.
수입 증가율이 수출 증가율을 12.9%포인트 웃돌면서 베트남은 204억6000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40억2000만 달러의 흑자를 냈던 것과 비교하면 무역수지는 344억8000만 달러 악화됐다.
8월 한 달간 수출입액은 1097억 달러였다. 전월보다 0.1% 감소했지만 지난해 같은 달보다는 31.7% 증가했다. 수출은 547억9000만 달러, 수입은 549억1000만 달러로 월간 무역적자는 1억2000만 달러였다.
다만 무역적자 확대를 소비재 수입 증가나 내수 과열의 결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올해 1~8월 베트남이 수입한 물품 가운데 생산재는 3720억4000만 달러로 전체 수입의 94.1%를 차지했다.
기계·설비·공구·부품이 전체 수입의 57.6%, 원료·연료·소재가 36.5%였다. 소비재는 232억6000만 달러로 5.9%에 그쳤다.
수입 증가의 상당 부분이 전자·기계·섬유·신발 등 수출 제조업에 투입되는 설비와 중간재라는 얘기다. 최근 무역적자에는 생산 확대를 위한 ‘선행 수입’의 성격도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이유다.
수출 10달러 중 8달러가 FDI 기업 몫
베트남 수출의 외형은 커졌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외국인 투자기업이 있다.
올해 1~8월 FDI 기업의 수출액은 원유를 포함해 3003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6.9% 증가했다. 베트남 전체 수출의 80.1%다. 수출 10달러 가운데 8달러 이상을 외국인 투자기업이 벌어들인 셈이다.
반면 베트남 국내 기업의 수출액은 744억7000만 달러로 7.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였다.
FDI 기업은 같은 기간 2902억3000만 달러를 수입해 101억4000만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국내 기업은 1050억7000만 달러를 수입해 306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베트남이 글로벌 생산기지로 성장했지만 현지 기업이 글로벌 제조기업에 필요한 부품·소재와 생산설비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숫자로 드러난다. 외국인 투자기업이 해외에서 부품과 설비를 들여와 베트남에서 조립·가공한 뒤 미국과 유럽 등에 수출하는 형태가 여전히 무역의 중심이다.
수출 품목 역시 제조업에 집중돼 있다. 가공·제조업 제품 수출액은 3379억9000만 달러로 전체 수출의 90.2%를 차지했다.
전자제품·컴퓨터·부품, 기계·설비·공구·부품, 휴대전화·부품, 섬유·의류, 신발, 운송수단·부품, 목재·목제품 등 7개 품목군의 수출액이 각각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들 7개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했다.
미국서 벌고 중국·한국서 부품 들여와
교역 상대국별 수지는 베트남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맡고 있는 역할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올해 1~8월 베트남의 대미 수출액은 1220억 달러였다. 대미 무역흑자는 1066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2.7% 증가했다.
반면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입국이다. 같은 기간 대중 수입액은 1619억 달러였고, 대중 무역적자는 1077억 달러로 41.7% 늘었다. 미국에서 거둔 흑자와 거의 맞먹는 규모다.
한국과의 교역에서도 베트남은 378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89.4%였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상대로 한 적자도 135억 달러로 43.4% 증가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대한국 무역적자를 단순히 양국 간 교역 불균형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베트남에 진출한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계 제조기업이 현지 공장에서 사용할 반도체·디스플레이·전자부품·기계설비 등을 한국에서 들여오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에서 수입된 중간재가 베트남에서 완제품으로 조립된 뒤 미국과 유럽 등으로 수출되는 공급망 구조다. 베트남의 대한국·대중국 적자와 대미국 흑자는 서로 분리된 숫자가 아니라 하나의 생산 네트워크 안에서 연결돼 있다.
이 구조는 베트남의 제조업 경쟁력을 키우는 동력이지만 동시에 원산지와 공급망 검증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베트남에서 생산됐다고 해서 모든 제품이 자동으로 베트남산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적용되는 자유무역협정과 수입국 규정에 따라 품목별 세번변경 기준, 부가가치 기준, 특정 공정 기준 등을 충족해야 한다.
기업은 핵심 부품과 원재료의 출처, 생산 공정, 부가가치 발생 과정 등을 증빙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산 제품의 단순 환적이나 최소 가공을 베트남산으로 신고하는 우회수출에 대한 주요 교역국의 감시가 강화될수록 이러한 관리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삼성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부족”

베트남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운영하는 삼성도 현지 협력업체를 선정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삼성베트남 구매센터를 담당하는 차지호 부법인장은 지난 3일 호찌민시에서 열린 ‘2026 수출포럼’에서 글로벌 공급업체 선정 기준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쟁력 있는 가격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안정적인 품질,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 역량, 데이터 기반 운영, 지속가능성에 대한 책임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삼성의 베트남 누적 투자액은 2025년 말 기준 240억 달러에 달한다. 삼성은 베트남 산업통상부와 지방정부 등과 협력해 현지 기업의 생산성 개선, 인력 양성 및 스마트공장 구축을 지원해 왔다.
삼성이 강조한 핵심 가운데 하나는 ‘데이터 기반 운영’이다. 생산량과 불량률, 설비 가동률, 납기 준수율, 재고와 원자재 투입 내역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품질과 생산능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렵다.
제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느 부품과 공정에서 원인이 생겼는지 추적할 수 있는 이력관리 능력도 중요하다. 스마트공장은 자동화 설비를 많이 설치한 공장만을 뜻하지 않는다. 생산·품질·재고·납기 정보를 데이터로 연결하고, 거래기업이 요구할 경우 관련 기록을 신속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삼성이 잠재 공급업체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거래할 파트너를 찾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정한 품질을 반복적으로 유지하고 기술 변화에 대응하면서 공급망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업에 실질적인 협력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만의 기준이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은 가격과 효율 중심에서 안전성·회복력·투명성·지속가능성을 함께 평가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인텔프로덕츠베트남도 코로나19 이후 첨단기술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으며 베트남으로의 이동이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패션기업 H&M은 베트남에서 40개 이상의 협력업체와 70개 이상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공장의 고용 인원은 6만 명 이상이다. 업종은 다르지만 공급업체에 환경·노동·추적관리 기준을 요구하는 흐름은 전자와 섬유산업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다.
‘싼 공장’에서 ‘입증하는 공장’으로
베트남 정부는 2026년 6월 발표한 정치국 결의 제10-NQ/TW호를 통해 2030년까지 약 1만 개의 베트남 국내 기업을 외국인 투자기업의 가치사슬과 공급망에 참여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가운데 500~1000개 기업을 1차 협력업체로 육성하고, 주요 산업의 평균 국산화율을 45~5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17개 자유무역협정(FTA), 동남아시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젊은 노동력은 베트남이 내세우는 강점이다.
국제 평가에서도 제조업 기반의 성장이 확인된다. 글로벌 비즈니스 컨설팅기업 데잔시라앤드어소시에이츠가 발표한 ‘아시아 제조업 지수 2026’에서 베트남은 조사 대상인 아시아 11개 제조 경제권 가운데 중국과 말레이시아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5위였다.
HSBC가 인용한 관련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공지능 관련 장비 교역에서 베트남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1.2%에서 2025년 12.4%로 높아졌다. 베트남이 저비용 조립기지에서 전자·반도체와 첨단장비 공급망의 주요 거점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다만 교역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베트남 국내 기업의 기술력과 부가가치가 같은 속도로 높아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전체 수출의 80.1%를 FDI 기업이 담당하고 생산재가 수입의 94.1%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베트남 공급망의 성장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한국 기업에도 전략 수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베트남을 저임금 생산기지로만 바라보거나 낮은 가격만 앞세워 글로벌 기업의 협력업체가 되려는 방식은 지속하기 어렵다.
생산·품질·재고 데이터를 디지털 방식으로 관리하고, 부품과 원재료의 출처를 추적하며, 납기·환경·노동 기준 준수 여부를 객관적인 자료로 증명하는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특히 베트남에서 생산해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하는 기업은 제품 개발과 계약 단계부터 원산지 결정 기준을 확인하고, 원재료 명세서와 공급자 확인서, 생산공정 및 원가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제조업이 기업에 던지는 질문은 이미 달라졌다. 과거에는 “얼마나 싸게 만들 수 있는가”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어떤 부품을 사용해 어떤 공정으로 생산했고, 그 사실을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는가”가 공급망 진입을 결정한다.
7701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교역액보다 한국 기업이 더 주목해야 할 숫자는 FDI 기업의 수출 비중 80.1%와 생산재 수입 비중 94.1%다. 이 간극을 기술과 데이터로 메우는 기업이 베트남의 다음 공급망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