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품 7만1,200개 전수검사…9,352개 ‘보호상표 위조’ 판정
중국산 베어링 등 20피트 컨테이너 1대…세관, 밀수 혐의 형사사건 개시
HS코드·가격·원산지 넘어 ‘브랜드의 적법성’까지 통관 검증
OEM·병행수입·중국산 부품 취급 한국 기업, 정품·상표사용 근거 관리해야

[한국관세신문=정도현 기자 | 호치민.하노이]
베트남 세관의 통관 검사가 물품의 수량과 가격, 원산지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제품에 붙은 상표가 적법한가’까지 파고들고 있다.
호찌민 최대 컨테이너 항만인 깟라이(Cát Lái)항에서 세관이 수입물품 7만1,200개를 검사한 결과, 이 가운데 9,352개가 베트남에서 보호받는 상표를 위조한 제품으로 확인됐다.
단순 행정처분으로 끝나지 않았다. 베트남 제2지역 세관은 해당 건을 밀수 혐의 형사사건으로 개시하고 사건 기록을 호찌민시 공안으로 넘겨 수사가 이뤄지도록 했다. 형사사건 개시가 해당 기업의 유죄 확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관 단계에서 발견된 지식재산권 문제가 형사 절차로까지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최근 베트남 세관이 HS코드와 과세가격, 원산지를 중심으로 사후심사를 강화하는 가운데 이번 사건은 지식재산권 역시 중요한 통관 리스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이제 통관 서류를 갖추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제품에 표시된 상표를 사용할 적법한 권리가 있는지, 정품이라는 사실과 조달 경로를 설명할 자료가 있는지까지 관리해야 한다.
20피트 컨테이너 열었더니…9,352개 위조상표 제품
베트남 Thanh Niên과 제2지역 세관에 따르면 사건은 호찌민 소재 T.M 무역수출입회사가 들여온 화물에서 시작됐다.
이 회사는 2025년 5월 중국산 베어링과 베어링 관련 부품을 수입 신고했다. CUXB 상표 제품 등을 포함해 모두 신제품으로 신고됐으며, 화물은 20피트 컨테이너 1대, 25개 품목군, 총 7만1,200개 규모였다.
제2지역 세관 통제팀과 사이공항구 제1지역 세관은 실제 화물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제품에 상표 위조 의심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사를 일시 중단하고 전문기관 감정 절차에 들어갔다.
세관이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수입업체가 즉시 필요한 서류와 물품을 제출하지 않자 세관은 추가 확인을 계속했다. 이후 2026년 3월 세관과 Vinacontrol이 전체 화물을 검사했고, 샘플을 베트남 과학기술부 산하 국가지식재산연구원(Viện Sở hữu trí tuệ quốc gia)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전체 7만1,200개 가운데 9,352개가 베트남에서 법적으로 보호되는 상표를 위조한 제품으로 판정됐다. 전체 화물이 위조품으로 판정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물량에서 상표권 침해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행정처분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서 더욱 주목할 부분은 세관의 후속 조치다.
제2지역 세관 통제팀은 결정 제1793호를 통해 해당 사건에 대해 밀수 혐의 형사사건을 개시했다. 이후 관련 사건 기록은 관할 기관인 호찌민시 공안으로 이송됐다.
세금 추징이나 과태료와 같은 행정조치만의 문제가 아니라 형사절차로 확대된 것이다.
물론 사건 개시는 곧 수입업체나 관계자의 유죄를 뜻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범죄 성립 여부와 책임 범위는 향후 수사를 통해 판단된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지식재산권 문제가 더 이상 법무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입·구매·통관 과정에서 관리해야 할 현실적인 리스크가 됐다는 점이다.
세관의 눈, ‘가격’에서 ‘브랜드’까지
그동안 베트남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의 통관 관리는 주로 HS코드, 관세율, 원산지증명서(C/O), 과세가격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 깟라이항 사건은 한 가지 질문을 추가한다.
“이 제품에 이 브랜드가 붙어 있어도 되는가.”
HS코드가 정확하고 관세를 정상 납부했더라도 제품에 표시된 상표를 사용할 권리가 없다면 별도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베트남 지식재산청은 상표를 서로 다른 조직이나 개인의 상품·서비스를 구별하기 위한 표지로 규정하고 있으며, 등록된 상표는 베트남 지식재산권 체계 안에서 보호 대상이 된다.
특히 한국 기업처럼 글로벌 공급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업체들은 이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다.
한국 본사가 중국 제조업체에 OEM·ODM 생산을 맡긴 뒤 제품을 베트남으로 보내거나, 중국에서 부품을 조달해 베트남 공장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거래는 이미 일반화돼 있다.
생산 자체가 정상적이라고 해도 상표 사용 권한이 불분명하거나 공급업체가 계약과 달리 제3자의 상표를 부착한 제품을 공급한다면 수입 과정에서 세관 검증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제품의 생산 근거뿐 아니라 브랜드가 붙은 근거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OEM·중국산 부품, 조달 단계부터 확인해야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분야는 OEM·ODM 생산이다.
한국 기업의 브랜드를 제3국 제조업체가 제품에 부착한다면 상표권자와 제조자, 수출자, 베트남 수입자 사이의 권리관계를 명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브랜드 라이선스 계약서나 위탁생산계약서, 상표사용승인서 등 해당 제조업체가 왜 그 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자료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을 비롯한 제3국에서 부품이나 완제품을 조달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가격과 납기만 보고 공급업체를 선정할 것이 아니라 해당 업체가 제품을 적법하게 제조·판매할 권한이 있는지, 유명 브랜드나 제3자 상표가 무단으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조달 단계에서 확인해야 한다.
통관 단계에서 문제가 발견된 뒤 공급업체에 자료를 요구하는 것보다 구매계약 단계에서 정품성과 상표사용 근거를 확인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병행수입과 위조품은 구분해야
병행수입에 대해서는 구분이 필요하다.
공식 유통망 이외의 경로를 통해 정품을 들여오는 병행수입과 상표를 위조한 제품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병행수입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위조상품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공식 유통망과 다른 거래구조를 이용할 경우 세관의 확인 과정에서 제품의 출처와 정품 여부, 거래 경로를 설명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병행수입 제품을 취급하는 한국 기업이라면 구매계약서와 인보이스뿐 아니라 제품이 어디에서 생산돼 어떤 유통경로를 거쳐 들어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까지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기업의 통관 체크리스트도 바뀌어야
이번 깟라이항 사건이 한국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베트남 통관 관리는 이제 ‘무엇을 얼마에 들여왔는가’에서 ‘어떤 권리로 이 제품과 브랜드를 거래하는가’까지 확대되고 있다.
기업 내부에서도 기존 통관 관리체계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HS코드는 정확한가.
원산지를 입증할 수 있는가.
과세가격은 적정한가.
그리고 이제 한 가지 질문을 더해야 한다.
“이 제품에 이 상표가 붙어 있는 이유를 세관에 설명할 수 있는가.”
OEM·ODM 생산품이라면 위탁생산 및 상표사용 권한을 확인하고, 제3국에서 부품이나 완제품을 구매한다면 공급자의 정품 공급 능력과 제품 출처를 점검해야 한다.
정품 제품을 취급하더라도 계약서와 인보이스만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필요할 경우 제조·유통 경로를 설명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함께 관리하는 것이 좋다.
베트남의 통관 시스템이 디지털화되면서 정상 화물의 처리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세관이 살펴보는 정보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HS코드와 가격, 원산지를 넘어 상표와 지식재산권까지 세관의 검증망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 기업의 통관 경쟁력은 단순히 화물을 얼마나 빨리 빼내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디에서 만들었는가. 얼마에 거래했는가. 원산지는 어디인가. 그리고 누구의 상표를 어떤 권리로 사용하고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에 언제든 자료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베트남에서 지식재산권은 이제 법무팀 서랍 속 계약서의 문제가 아니다.
구매와 생산, 물류와 통관 현장에서 함께 관리해야 할 ‘공급망 리스크’가 되고 있다.
[ 기사자료: Thanh Niên, 베트남 제2지역 세관지국, 베트남 국가지식재산연구원, 베트남 지식재산청(IP Vietna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