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HBM은 한국 우위…중국 CXMT·SMIC 추격 속도 빨라져
CATL·BYD, 세계 전기차 배터리 절반 이상 장악…K배터리 3사 점유율 15%대로
미국의 대중 기술 봉쇄, 한국에 ‘반사이익’ 아닌 중국 공장 리스크로
선전·둥관에서 베트남 북부까지…첨단산업 공급망에는 분리와 연결이 공존한다

[한국관세신문=정도현 기자 | 호치민·선전]
중국 선전 화창베이(華強北)의 전자상가에서 스마트폰 부품 샘플을 주문하면 하루를 넘기지 않고 수정된 시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회로기판(PCB)은 선전에서 설계하고, 금형 제작과 사출·조립은 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둥관(東莞)에서 해결한다. 제품이 확정되면 광저우와 홍콩의 공항·항만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나간다.
선전과 둥관의 진짜 경쟁력은 특정 기업 한 곳의 기술력에 있지 않다.
설계와 부품 조달, 금형 제작, 시제품 생산, 조립과 물류가 좁은 지역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제조 생태계의 밀도’가 핵심이다.
이 촘촘한 전자산업 생태계는 이제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 북부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한 부품과 소재가 육로와 해로를 통해 박닌·박장·타이응우옌·하이퐁으로 이동하고, 이곳에 자리 잡은 삼성전자·LG전자·폭스콘·럭스셰어 등의 생산라인에서 스마트폰과 전자제품으로 조립된다.
베트남 세관에 따르면 2025년 컴퓨터·전자제품 및 부품 수출액은 1077억5000만 달러로 처음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 품목만으로 베트남 전체 상품 수출의 약 23%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제 제품의 ‘진짜 국적’을 가려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공장에서 조립한 제품에도 중국산 회로기판과 배터리 소재, 제조 장비가 들어간다. 미국 기술로 설계한 반도체가 한국에서 생산된 뒤 중국의 후공정을 거쳐 베트남에서 완제품에 탑재되기도 한다.
한중 첨단산업의 현실은 ‘탈중국’과 ‘협력’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반도체에서는 한국의 기술력이 여전히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지만, 배터리와 소재 공급망에서는 중국의 압도적인 규모와 속도가 이미 세계 시장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아직 한국의 시간
반도체를 하나의 산업으로 묶어 “한국이 앞선다”거나 “중국이 다 따라잡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시장의 실상을 오독하는 일이다.
적어도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한국 기업의 우위가 여전히 뚜렷하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매출 기준 38%, SK하이닉스는 29%를 차지했다.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은 67%다. 중국 대표 D램 업체 CXMT가 8%까지 올라섰지만 선두권과는 아직 상당한 격차가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가속기와 데이터센터 서버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가장 강력한 방어선 가운데 하나다.
SK하이닉스는 HBM3E 시장에서 선두를 지켜왔고 HBM4 양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HBM4 생산 수율을 끌어올리며 차세대 시장에서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가 범용 부품을 넘어 AI 인프라의 전략 자산으로 변하면서 HBM 경쟁력은 기업 실적뿐 아니라 국가 기술안보와도 직결되고 있다.
한국 반도체의 경쟁력은 단순한 설비 규모에서 나오지 않는다.
미세공정 수율과 3차원 적층, 발열 제어, 첨단 패키징, 고객사 인증, 안정적인 대량생산 능력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결과다. 중국이 막대한 국가 자금을 투입한다고 해도 단기간에 뛰어넘기 어려운 기술 장벽이다.
하지만 중국의 추격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CXMT는 범용·모바일 D램을 중심으로 생산과 고객 기반을 넓히고 있다. 거대한 중국 스마트폰·PC·서버 시장을 기반으로 양산 경험을 축적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CXMT는 2026년 8월 베이징 이좡(亦庄)에 두 번째 12인치 D램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허페이에 두 곳, 베이징에 한 곳의 12인치 D램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추가 증설이 현실화하면 생산능력은 크게 확대될 수 있다. 다만 새 공장의 구체적인 생산능력과 투자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한국 기업이 HBM과 최첨단 D램에 역량을 집중하는 사이 중국이 범용 메모리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구조가 굳어질 가능성도 있다.
범용 시장을 내주면 중국 기업은 그곳에서 확보한 매출과 생산 경험을 다시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에 투입할 수 있다.
오늘의 범용 제품이 내일의 첨단 제품을 만드는 자금과 학습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SMIC와 화웨이, 봉쇄 속에서 만든 ‘7나노’의 경고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로 넘어가면 경쟁 구도는 더욱 복잡해진다.
삼성전자가 3나노 이하 공정에서 대만 TSMC와 경쟁하는 동안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는 미국의 장비 수출통제로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SMIC는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활용한 다중 패터닝 방식으로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해왔다. 비용과 수율 측면에서는 세계 최첨단 공정과 상당한 격차가 있다.
그럼에도 화웨이가 중국산 7나노급 칩을 스마트폰 등에 탑재해온 사실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중국의 강점은 수율이 낮고 생산단가가 높아도 국산화와 기술 축적을 목표로 장기간 버틸 수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의 기술 봉쇄가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개발 속도를 늦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중국 기업들이 자국산 장비와 소재를 더 적극적으로 시험하고 채택하도록 만드는 촉매가 된 측면도 있다.
중국 반도체 공장에서는 성숙 공정을 중심으로 자국산 식각·증착·세정 장비의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AMEC와 나우라테크놀로지 등 중국 장비업체들은 범용 공정에서 경험을 축적한 뒤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첨단 노광과 일부 계측·검사장비에서는 여전히 해외 선두업체와 격차가 크지만 식각·증착·세정 등에서는 격차를 줄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은 아직 ASML의 첨단 노광장비와 미국·일본 업체들이 장악한 핵심 장비·소재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 산업을 바라보는 기준은 바뀌어야 한다.
‘기술 봉쇄 때문에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는 중국’이 아니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자국 기술로 일단 만들어내며 경험을 축적하는 중국’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경계해야 할 변화는 바로 이 지점이다.
배터리는 이미 중국의 시간
배터리 시장으로 무대를 옮기면 한중 간 주도권은 사실상 뒤집어진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은 1187GWh로 전년보다 31.7% 증가했다.
CATL의 시장점유율은 39.2%, BYD는 16.4%였다. 두 중국 기업의 합산 점유율만 55.6%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15.4%로 전년보다 3.3%포인트 낮아졌다.
중국 기업 두 곳이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반면 한국 3사의 점유율은 6분의 1 아래로 내려갔다.
중국 배터리 기업의 성장을 정부 보조금과 저가 공세만으로 설명한다면 시장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CATL과 BYD는 광물 정제와 소재, 배터리 셀, 완성차, 에너지저장장치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특히 BYD는 배터리를 직접 생산해 자사 완성차에 탑재한다. 자동차와 배터리를 동시에 설계하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양산에 적용할 수 있는 구조다.
중국 전기차 시장의 압도적인 규모도 결정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5년 중국은 세계 전기차 생산의 70%, 배터리 셀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중국 기업들은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신기술을 시험하고 생산량을 늘린 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을 떨어뜨리고 해외시장으로 진출한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니켈 함량을 높인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 기업들은 가격이 저렴하고 열 안정성이 뛰어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고도화했다.
과거 ‘저가형 배터리’로 평가받던 LFP는 에너지 밀도 개선과 셀투팩(CTP) 기술을 통해 보급형 전기차는 물론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까지 영역을 넓혔다.
기술 사양의 우위를 중시한 한국과 시장이 요구하는 가격·성능의 균형을 빠르게 구현한 중국의 전략 차이가 시장점유율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셀은 한국이 만들어도 소재는 중국을 거친다
한국 배터리 산업의 더 깊은 아킬레스건은 셀 제조 기술보다 소재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에 있다.
리튬과 니켈, 코발트가 호주·인도네시아·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채굴되더라도 이를 정제하고 배터리 소재로 만드는 중간 단계에서는 중국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IEA에 따르면 2025년 중국은 세계 전기차용 양극활물질 생산의 약 85%, 음극활물질 생산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배터리 셀 생산에서도 80% 이상을 담당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과 유럽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건설하더라도 중국산 소재를 단기간에 완전히 끊기 어려운 이유다.
‘탈중국 배터리’는 배터리 셀 공장의 주소만 바꾼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광물 정제에서 전구체·양극재·음극재, 배터리 셀과 폐배터리 재활용까지 가치사슬 전체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중국산 소재를 줄이면 공급망 안보는 강화되지만 비용이 올라갈 수 있다. 반대로 중국 공급망을 계속 활용하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수출통제와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된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지금 ‘안보와 가격’ 사이의 외나무다리를 걷고 있다.
미국의 대중 봉쇄, 한국에는 부메랑이 됐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는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중국 기업의 첨단 반도체 생산이 막히면 한국 메모리 업체의 우위가 길어지고 중국 기업으로 갈 주문이 한국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의 규제는 한국 기업의 중국 생산기지를 제약하는 또 다른 위험으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 다롄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한다.
미국은 2025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적용됐던 ‘검증된 최종사용자(Validated End User·VEU)’ 지위를 철회했다. 대신 2026년 중국 공장으로 필요한 반도체 제조장비를 반입할 수 있도록 연간 허가를 부여해 당장의 생산 차질은 피하도록 했다.
핵심은 공장의 즉각적인 폐쇄가 아니다.
‘첨단화의 불확실성’이다.
중국 공장에 새로운 장비를 제때 들여오지 못하면 공정 전환과 수율 개선 속도가 늦어진다. 공장을 철수하자니 막대한 기투자 자산과 중국 시장을 포기해야 하고, 그대로 두자니 시간이 흐를수록 구형 생산기지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는 2026년 8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의 수출통제 강화 가능성에 대비해 중국 AMEC의 반도체 장비를 평가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에서 AMEC 장비를 시험했다는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아직 중국산 장비의 실제 채택이나 대규모 도입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보도가 던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
미국의 수출통제가 중국 반도체 산업을 압박하는 동시에 중국 장비업체에 새로운 시장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장비산업을 견제할수록 중국에 있는 해외 반도체 공장들은 장비 조달선을 다변화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 공장의 운명, 철수보다 ‘관리된 동결’
삼성전자 시안 공장과 SK하이닉스 우시·다롄 공장이 단기간에 문을 닫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세계 메모리 공급망에서 이들 공장이 맡은 역할이 크고, 이미 막대한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대신 중국 공장의 역할이 최첨단 생산기지에서 기존 세대 제품 중심의 생산기지로 서서히 조정될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첨단 D램과 고단 낸드, HBM 관련 신규 투자는 한국을 중심으로 배치하고 중국 공장에서는 기존 세대 제품을 높은 수율로 장기간 생산하는 방식이다.
공장을 급격히 철수하기보다 첨단 신규 투자를 제한하면서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는 ‘관리된 동결’이다.
다만 이는 기업의 생산전략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 당국이 한국 기업의 신규 투자가 줄어드는 것을 중국 시장 축소나 기술 이탈로 받아들일 경우 현지 규제와 영업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도체 공장의 문제가 외교와 통상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기업은 미국의 기술규제와 중국의 시장·정책 압력 사이에서 어느 한쪽도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선전의 속도, 베트남의 조립, 한국의 기술
선전과 둥관 현장을 보면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다.
특정 대기업이 모든 기술을 독점해서가 아니다.
반도체와 배터리, 회로기판, 디스플레이, 금형, 사출, 포장, 물류기업이 좁은 지역에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선전의 2025년 지역내총생산(GRDP)은 3조8730억 위안, 약 5573억 달러로 전년보다 5.5% 성장했다.
화웨이·텐센트·DJI·BYD를 비롯한 기술기업과 수많은 부품·장비업체가 이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구성한다.
둥관은 선전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바꾸는 생산기지 역할을 한다.
설계를 변경하면 인근 금형업체와 부품회사가 즉시 대응한다. 시제품에서 양산으로 넘어가는 시간 간격이 짧다.
베트남 북부의 전자산업 클러스터는 이 중국 생태계와 경쟁하면서도 동시에 깊이 연결돼 있다.
중국의 부품·소재기업들은 베트남에 공장을 세우고 중국에서 생산한 중간재를 베트남으로 공급한다.
삼성전자·LG전자·폭스콘·럭스셰어 등이 베트남 생산을 늘릴수록 이들을 따라가는 중국 협력업체의 베트남 투자도 확대된다.
따라서 베트남을 중국을 완전히 대체한 독립적인 생산기지로 보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오히려 중국 공급망의 외연과 글로벌 기업의 생산기지가 베트남에서 겹쳐지는 새로운 형태의 제조 네트워크에 가깝다.
한국은 고부가가치 메모리와 첨단 기술을 제공한다.
중국은 소재와 부품, 장비 그리고 거대한 양산 생태계를 제공한다.
베트남은 이를 조립해 세계 시장으로 내보낸다.
이 한·중·베 삼각 공급망을 무시한 채 단순히 “중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간다”고 표현하는 것은 현장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공장은 베트남으로 옮겨도 부품과 소재의 상당 부분은 중국에서 넘어올 수 있다.
생산기지의 이동이 곧 공급망의 탈중국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술만으로 규모를 이길 수 있는가
메모리 반도체와 HBM에서는 한국의 기술 우위가 여전히 강하다.
하지만 중국은 범용 반도체와 장비, 소재, 배터리 가치사슬 전반에서 거대한 내수시장과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아래에서부터 시장을 넓히고 있다.
배터리에서는 이미 중국이 시장의 판을 짜는 주도권을 잡았다.
CATL과 BYD는 성능 좋은 배터리 셀 하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광물과 소재, 배터리,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 기술개발과 양산, 원가 절감의 속도를 높인다.
한국의 강점이 ‘기술의 완성도’라면 중국의 강점은 ‘규모와 속도, 공급망 지배력’이다.
문제는 기술 우위가 영원한 방패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기술이 시장과 생산량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결국 연구실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의 규모가 매출과 연구개발 투자로 이어지고 다시 기술 격차를 좁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한국에 남은 시간은 예상보다 짧을 수 있다.
미국의 대중 기술통제가 중국의 성장을 계속 늦춰줄 것이라는 기대에만 의존하는 것도 위험하다.
미국의 통제는 중국 기업의 발전을 제한하지만 동시에 한국 기업의 중국 생산과 공급망 운영에도 부담을 준다.
한국은 미국 중심의 첨단기술 협력에 참여하면서도 중국이라는 시장과 공급망의 현실을 냉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한중 첨단산업의 미래는 ‘한국의 기술이냐, 중국의 규모냐’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핵심 기술이 중국의 규모에 흡수되지 않도록 기술 격차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시장과 공급망을 활용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단절도, 과거와 같은 의존도 답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선별적 분리와 전략적 연결’이다.
반도체 공장은 국경 안에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첨단산업의 공급망 전체를 국경 안에 가둘 수는 없다.
막연한 탈중국론도, 과거식 중국 의존론도 정답이 아니다.
어떤 기술은 지키고, 어떤 시장에서는 협력하며, 어떤 소재와 공급망은 분산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한국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의 운명은 기술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술을 생산 규모와 시장, 공급망 그리고 외교·통상 전략으로 연결하는 국가적 역량이 결국 승부를 가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