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국보다 시급한 과제는 ‘중국 리스크 관리’다
공급망 독립과 생산지 이전은 별개…“중국 끊는 것 불가능”
[정도현 기자 | 호치민·하노이·광저우]

중국을 떠나는 한국 기업은 분명 늘고 있다. 그러나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한국 기업은 많지 않다.
베트남 북부 박닌과 타이응우옌, 하이퐁 산업단지에는 한국의 전자·부품·소재 공장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남부 빈즈엉과 동나이, 롱안 일대도 섬유·기계부품·소비재 기업들이 채우고 있다. 외견상 한국 제조업의 축은 중국에서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ASEAN)으로 상당 부분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장 안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전혀 다른 현실이 보인다. 설비는 한국산이고 최종 생산지는 베트남이지만, 공장을 돌리는 핵심 원부자재와 중간 투입재 상당수는 여전히 중국산이다. 배터리 소재, 전자부품, 화학 원료, 희토류, 포장재에 이르기까지 중국 공급망은 보이지 않는 밧줄처럼 한국 기업의 생산라인을 붙잡고 있다.
무역의 축은 이미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25년 한국의 전체 수출은 7,097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아세안 수출도 전년 대비 7.4% 증가한 1,225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대중국 수출은 반도체 호조에도 불구하고 석유화학·철강 부진으로 힘을 잃었다. 한국 수출 시장의 외연은 넓어지고 있지만, 제조 공급망의 뿌리는 여전히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지에 깊숙이 박혀 있는 셈이다.
■ 생산지는 옮겼지만, 중국산 공급망은 따라왔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처음에는 비용 절감의 문제였다. 치솟는 중국 인건비를 피해 젊고 풍부한 노동력이 있는 베트남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한 생산기지 이전을 넘어섰다. 미·중 갈등 장기화, 미국의 대중 견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원산지 규정 강화 속에서 베트남은 한국 기업의 전략적 방파제가 됐다.
문제는 생산지 이전과 공급망 독립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 한국 전자부품 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공장은 베트남에 있지만 핵심 부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옵니다. 베트남 현지에서 대체 공급처를 찾으려 해도 품질, 단가, 납기를 동시에 맞추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결국 중국을 완전히 끊어내는 것은 현장에서는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현장의 고백은 ‘탈중국’이라는 구호가 생산 현장에서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를 보여준다. 생산지를 옮겼다고 해서 공급망까지 독립한 것은 아니다.
특히 배터리, 반도체, 전기차, 디스플레이 등 첨단 산업일수록 중국 의존도는 더 민감하다. 중국은 이미 단순 조립기지를 넘어 핵심 광물 정제, 소재 가공, 부품 생산, 완제품 제조로 이어지는 수직형 공급망을 구축했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인도·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옮겨도 중국산 소재와 부품 없이 제품을 완성하기 어려운 구조다.
■ 공급망 전쟁의 본질은 ‘광물’보다 ‘가공 능력’이다
공급망의 아킬레스건은 원광석 자체보다 중국이 쥐고 있는 가공·정제 능력이다.
희토류, 리튬, 흑연, 코발트, 니켈 등 핵심 광물은 광산이 있는 국가와 실제 산업 공급망을 지배하는 국가가 다르다. 원광은 호주, 인도네시아, 칠레, 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나오지만, 이를 첨단 산업에 투입할 수 있는 고순도 소재로 정제하는 단계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중국은 이 가공 능력을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희토류 관련 제품과 기술,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 강화는 단순한 자원 수출 규제가 아니다. 원자재뿐 아니라 중국 기술을 거친 부품과 장비까지 관리 대상에 올리는 방식은 글로벌 제조업 전체의 공급망을 흔들 수 있는 카드다.
한국 정부도 이 위험을 인식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핵심광물 공급망 안정을 위해 33개 핵심광물과 10개 전략 핵심광물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의 시간표와 기업 현장의 시간표는 다르다. 정부는 다변화를 말하지만, 매일 단가와 납기를 맞춰야 하는 기업은 가장 빠르고 저렴한 중국 공급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에 놓여 있다.
■ 베트남은 대안이지만, 완전한 대체지는 아니다

베트남은 한국 기업에 가장 현실적인 ‘포스트 차이나’다. 삼성전자, LG, 효성, 포스코, 롯데 등 주요 기업들은 이미 베트남에 생산·유통 생태계를 구축했다. 2025년 한국의 대베트남 수출은 628억 달러로 전년 대비 7.6% 증가하며 아세안 전략의 핵심 교두보임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베트남이 중국을 100%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저변이 아직 얕다. 베트남은 조립과 일부 가공에는 강점을 보이지만, 고부가 소재, 정밀 부품, 고급 금형, 산업용 화학소재, 핵심 장비 분야에서는 중국의 산업 생태계를 따라잡지 못했다.
둘째, 물류 인프라에도 병목이 남아 있다. 항만, 내륙 운송, 창고, 콜드체인, 검사·인증 시스템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지만, 선전·광저우·둥관·포산으로 이어지는 중국 남부 제조 벨트의 속도와 밀도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셋째, 베트남 제조업 자체도 중국 공급망에 깊게 연결돼 있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상당수 완제품은 중국산 원자재와 부품을 사용한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동했다 해도, 공급망 전체로 보면 중국 의존이 형태만 바뀐 경우가 많다.
결국 베트남은 탈중국의 종착지가 아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완충지대에 가깝다.
■ ‘탈중국’보다 ‘중국 리스크 관리’가 먼저다
한국 기업이 지금 선택해야 할 카드는 감정적 탈중국이 아니다. 냉정한 중국 리스크 관리다.
첫째,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생활화해야 한다.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식은 현실적이지 않다. 중국 생산력을 일정 부분 유지하되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보조 생산축을 함께 키우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원부자재 조달처를 이중화해야 한다. 완제품 공장만 옮기는 것은 공급망 재편이 아니다. 소재, 부품, 포장재, 물류, 검사, 인증까지 공급망 전 과정에서 복수의 조달선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중국을 하나의 시장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과거 중국은 한국 기업에 거대한 시장이자 값싼 생산기지였다. 지금의 중국은 시장이면서 공급자이고, 경쟁자이면서 규제자다. 중국을 단일한 기회가 아니라 복합 리스크 변수로 봐야 한다.
광저우에서 만난 한 원부자재 무역상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기업들은 자신들이 중국을 떠났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산 부품이 하루만 끊겨도 베트남 공장이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중국을 버릴 것인가가 아니라, 중국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이 말은 공급망 재편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 중국이 흔들려도 공장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한중관계는 과거의 황금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단칼에 끊어낼 수도 없다.
무역 시장에서 중국은 이미 최대 흑자국에서 최대 경쟁국으로 변했다. 공급망에서는 여전히 한국 제조업의 핵심 투입재를 쥐고 있다. 아세안은 분명 기회의 땅이지만, 아직 중국을 완전히 대체할 만큼 산업 생태계가 깊지는 않다.
한국 제조업의 생존 공식은 바뀌어야 한다.
과거의 공식은 이랬다.
■ 한국 기술 + 중국 생산 → 세계시장 수출. 지금 필요한 공식은 다르다.
■ 한국 기술 + 아세안 생산 + 중국 리스크 관리 +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공급망 재편의 본질은 중국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흔들려도 한국 기업의 공장이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한중관계 다시보기 ③공급망 의 결론은 분명하다.
한국은 중국을 끊을 수 없다. 그러나 중국 하나에 묶여 있어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