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 ‘신동반자 시대’, 건기식·의약품 시장의 진짜 장벽과 해법

[ 정도현기자-호치민 ] 2026년,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분명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분업 구조에서 출발한 양국 협력은 이제 헬스케어·바이오·기능성 식품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시장은 이미 열려 있다. 자유무역협정과 다자협정을 통해 관세는 상당 부분 낮아졌고, 교역의 문턱은 과거보다 훨씬 낮아졌다.
그런데 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기업들은 말한다.
“이제 관세는 문제가 아니다. 허가가 문제다.”
이 문장은 오늘날 한·베 경제 협력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낸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장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규제 시스템이다.
■ 시장은 열렸지만, 통과해야 할 ‘문’은 더 많아졌다
건강기능식품과 의약품 분야에서 이 변화는 특히 선명하다. 과거 베트남은 비교적 진입이 쉬운 시장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규제 체계는 빠르게 정교해졌고, 동시에 엄격해졌다. 기능성 표현은 제한되고, 광고 책임은 확대됐으며, 등록 절차는 더욱 까다로워졌다.
의약품은 더 복잡하다. 허가에 1~2년이 소요되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심사 지연, 반복되는 보완 요청, 현지 대리인 의존 구조, 가격 통제까지 겹치며 시장 진입 자체가 하나의 프로젝트가 됐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왜 같은 시장에서 어떤 기업은 실패하고, 어떤 기업은 살아남는가.

■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것은 ‘제품’이 아니라 ‘순서’다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실패의 구조는 단순하다.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좋은 제품이면 통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진출한다. 그러나 베트남 시장은 그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패하는 기업은 대개 이렇게 움직인다.
제품을 먼저 만들고, 유통사를 찾고, 마지막에 허가를 고민한다.
반대로 성공하는 기업은 정반대의 순서를 따른다.
규제를 먼저 분석하고, 인허가 전략을 설계한 뒤, 그에 맞는 제품과 시장을 구성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실행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시장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다.

한국관세신문
■ ‘유통 시장’에서 ‘규제 시장’으로의 전환
베트남 헬스케어 시장은 지금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유통망을 확보하면 일정 수준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유통 이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규제 적합성이다.
건강기능식품에서는 성분 기준과 라벨링, 광고 표현이 핵심이고, 의약품에서는 허가 속도와 가격 구조, 입찰 시스템이 시장을 좌우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깨닫는 것은 하나다.
“유통 파트너는 있어도, 규제 파트너가 없다”는 사실이다.
■ 신동반자 관계의 핵심은 ‘규제 협력’이다
최근 한·베 협력의 흐름에서 주목해야 할 변화가 있다. 단순한 교역 확대가 아니라 규제 협력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만약 한국의 의약품과 안전 기준이 베트남에서 ‘참조 기준’으로 인정된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의 룰 자체가 바뀐다. 허가 기간은 단축되고, 중복 심사는 줄어들며, 기업의 진입 속도는 획기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이는 양국 관계가 단순한 무역 파트너를 넘어, 제도와 시스템을 공유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이제 필요한 것은 ‘수출 전략’이 아니라 ‘시스템 전략’이다
이 변화 속에서 한국 기업과 정부가 고민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더 이상 “무엇을 팔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가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공동 인증과 사전 심사 같은 협력 모델을 통해 규제 비용을 줄여야 한다.
둘째, 현지 파트너십의 기준을 유통이 아니라 인허가 역량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기반의 투명한 인허가 시스템 구축을 통해 불확실성을 낮춰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시장 진출이 아니라, 시장 시스템에 대한 공동 설계다.
■ 결론: 승자는 제품이 아니라 ‘속도’를 만드는 쪽이다
한·베 경제 협력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제조에서 서비스로, 생산에서 규제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 속에서 승부를 가르는 기준은 명확하다.
누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규제를 통과하는 시스템을 갖췄는가다.
관세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시작된 것은 ‘허가의 시대’, 그리고 그 위에 구축될 새로운 동반자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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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현 기자는 2001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 광저우에서, 2019년부터 현재까지 베트남 호치민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베트남 지역 전문 기자다.
현재 베트남 한상과 한인회에서 고문 및 부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동남아 및 중국 경제·산업 분야를 집중 취재하고 있다. – 제보 및 문의: dhjung@kcnews.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