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심사 875건·추징 및 처분 4조7810억 동…연간 목표 120%
원산지·HS코드·과세가격 집중 점검…2027년 ‘디지털 세관’ 법제화
韓 제조기업, 통관대행 넘어 수년치 데이터 정합성 관리해야

[한국관세신문=정도현 기자 | 호치민.하노이]
베트남에서 수입신고가 빨리 끝났다고 세관 리스크까지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전자신고 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정상적인 수출입 화물이 세관을 통과하는 절차는 과거보다 빠르고 간편해졌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분명 반가운 변화다.
그러나 세관의 감시망까지 느슨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베트남 세관은 기업이 수년간 제출한 수출입 신고자료와 원산지, 품목분류, 과세가격 등의 데이터를 축적해 위험도가 높은 기업과 거래를 선별하고 통관 이후 다시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관리체계를 바꾸고 있다.
세관의 무게중심이 ‘통관 단계의 현장 검사’에서 ‘데이터 기반 위험관리와 사후심사’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세관과 통계당국에 따르면 올해 1~8월 상품 수출입액은 7701억4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7% 증가했다. 역대 1~8월 기준 최대 규모다.
수출은 3748억4000만 달러로 22.4% 증가했지만 수입은 3953억 달러로 35.3% 늘었다. 수입 증가 속도가 수출을 앞지르면서 무역수지는 204억6000만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같은 기간 수출입 관련 세수도 352조7660억 동으로 전년 동기보다 17.4% 증가했다.
교역량이 빠르게 불어나면서 모든 화물을 사람이 일일이 검사하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해졌다.
베트남 정부가 꺼내든 해법이 ‘디지털 세관’과 ‘위험관리’다.
베트남 세관은 수출입 신고와 전자문서, 세금 납부, 원산지, 과거 신고 이력 등을 전산화하고 이를 위험관리 체계와 연계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초부터 8월 20일까지 베트남 세관이 접수한 행정·통관 관련 서류는 8573만 건을 넘는다. 이 가운데 약 8572만 건이 온라인으로 처리됐고 직접 방문이나 우편으로 접수된 서류는 1만9709건에 불과했다.
지난 8월 23일 베트남 국회를 통과한 개정 관세법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2027년 3월 1일부터 시행되는 개정법은 전자상거래를 통한 수출입 물품 관리와 디지털 세관 구축의 법적 근거를 보강하고 기업의 서류·절차 부담을 줄이는 방향을 담았다. 국가단일창구(NSW)와 ASEAN 단일창구(ASW)를 연결하는 시스템 확대도 진행 중이다.
통관 문턱은 낮아졌지만 사후심사는 더 날카로워졌다
기업 입장에서 통관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베트남 세관은 지난해 12월 15일부터 올해 8월 14일까지 875건의 사후심사(Post-Clearance Audit)를 완료했다.
이를 통해 부과한 세금과 행정처분 금액은 4조7810억 동을 넘어섰다. 올해 연간 목표의 120%에 해당한다.
실제 국고로 징수된 금액도 3조4700억 동을 넘었다.
세관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분야도 한국 기업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항목들이다.
베트남 세관은 원산지, 지식재산권, HS코드, 과세가격, 품목별 수입정책을 대표적인 고위험 분야로 꼽고 있다.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한국 제조기업 상당수는 한국과 중국, 일본, ASEAN 등에서 원부자재와 설비를 들여온 뒤 현지에서 가공·생산해 미국·유럽·한국 등으로 다시 수출한다.
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수십 개, 많게는 수백 개의 수입 품목이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HS코드 하나가 잘못 적용되면 관세율이 달라질 수 있다. 원산지 판정이 달라지면 FTA 특혜관세 적용에도 영향을 준다.
해외 관계회사로부터 원재료나 설비를 구매하는 기업은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세관 단계에서는 수입물품의 과세가격, 세무 단계에서는 관계사 간 이전가격이 각각 검증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제도지만 거래가격의 근거와 계약구조가 불분명하면 기업에는 복합적인 세무·관세 리스크가 된다.
과거에는 통관 당시 세관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기업도 한숨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데이터 기반 세관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한 기업이 수년간 신고한 HS코드와 수입가격, 원산지, 거래 상대국, FTA 활용 기록이 데이터로 축적된다.
같은 물품인데 신고 시점에 따라 HS코드가 달라지거나, 신고가격이 유사 거래와 큰 차이를 보이거나, 원산지 자료와 실제 생산공정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가 발견된다면 세관의 위험관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통관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오류가 시간이 지난 뒤 누적 데이터의 비교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의미다.
수출 1500억 달러 전자산업…데이터도 복잡해졌다
베트남 세관의 변화는 산업구조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올해 1~8월 베트남의 컴퓨터·전자제품 및 부품 수출액은 1010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51.1% 증가했다.
휴대전화와 부품 수출 456억 달러까지 합하면 두 전자제품군의 수출액은 약 1466억 달러에 달한다. 베트남 전체 수출의 40% 안팎이다.
수출 증가를 주도하는 것은 외국인투자기업(FDI)이다.
8개월 동안 FDI 기업이 기록한 수출액은 3003억7000만 달러로 전체 수출의 **80.1%**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과 수많은 협력업체가 베트남 전자산업 공급망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관의 디지털 전환은 한국 기업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수출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부품과 소재, 설비의 국경 이동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거래량이 늘고 공급망이 복잡해질수록 기업이 세관에 제출하는 데이터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훗날 기업의 통관 적정성을 판단하는 자료가 된다.
이제 ‘통관 담당자’보다 ‘통관 데이터 관리’가 중요하다
베트남 정부가 기업에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상적인 무역은 더욱 신속하게 통과시키되 탈세와 원산지 위반, 과세가격 문제, HS코드 오류 등 위험 거래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베트남 세관 역시 앞으로 위험관리와 사후심사를 현대적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방식으로 전환하고 고위험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의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통관대행업체에 신고를 맡기고 수입신고필증을 보관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품목에 동일한 HS코드가 일관되게 적용됐는지, FTA 원산지 증빙자료와 실제 생산공정이 일치하는지, 관계사 거래가격에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지, 수입신고 자료와 회계·재고·생산 데이터가 서로 맞는지를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특히 통관담당자가 바뀌거나 대행 관세사가 변경되더라도 과거 신고의 논리와 근거가 유지될 수 있도록 HS코드·원산지·과세가격 판단 근거를 기업 내부 데이터로 체계화하는 작업이 중요해졌다.
베트남의 통관은 앞으로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통관이 빨라진다는 것이 세관의 관리가 느슨해진다는 뜻은 아니다.
기업이 제출한 수많은 신고자료가 데이터로 연결되면 세관은 특정 시점의 신고서 한 장이 아니라 기업의 거래 흐름과 과거 기록을 함께 볼 수 있다.
베트남 세관의 디지털화가 현지 진출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역설적이다.
“통관은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세관의 기억은 더 길어지고 있다.”
이제 한국 기업이 대비해야 할 것은 세관 창구에서 보내는 몇 시간이 아니다.
통관이 끝난 뒤에도 장기간 축적되고 비교될 수 있는 ‘기업의 수출입 데이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