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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현기자 한중관계 다시보기 ①] 프롤로그 : 한중관계, 다시 정상화될 수 있을까

2026년 07월 24일 (금)

사드 10년·팬데믹 5년이 남긴 불균형…고객에서 경쟁자로 변한 중국
‘탈중국’ 환상 깨고 ‘어떤 거리에서,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답해야

중국 선전 화창베이(華強北) 전자상가. 2000년대 중국은 한국 기업의 생산기지이자 기회의 땅이었지만, 2026년 현재 중국은 한국의 고객이자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변했다.| 한국관세신문
중국 선전 화창베이(華強北) 전자상가. 2000년대 중국은 한국 기업의 생산기지이자 기회의 땅이었지만, 2026년 현재 중국은 한국의 고객이자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변했다.| 사진=Sino Shipping

[정도현 기자|호치민·광저우]

중국 광저우(廣州)의 대규모 전자부품 시장을 처음 밟았던 2000년대 초반, 한국 기업인들에게 중국은 말 그대로 ‘기회의 땅’이었다.

베이징에서 유학하며 중국어를 배우고, 이후 광저우에서 18년 동안 미디어·문화 현장과 비즈니스 최전선을 오가며 지켜본 중국은 거대한 공장이자 거대한 시장이었다. 한국은 기술과 브랜드를 가져왔고, 중국은 인력과 속도, 시장으로 화답했다.

당시 한국 기업인들은 광저우와 선전, 둥관, 칭다오, 상하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전자부품을 조달하고, 의류와 잡화를 만들고, 컨테이너를 채워 세계 시장으로 보냈다. 중국은 싸고 빠른 생산기지였고, 한국 기업은 중국의 성장 속도 위에 올라타 세계 시장을 두드렸다.

그 시절 한·중 관계의 방정식은 비교적 명확했다.

한국은 기술을 팔았고, 중국은 이를 배웠다.
한국은 브랜드를 만들었고, 중국은 소비로 답했다.
한국 기업은 중국을 생산기지로 삼았고, 중국 소비자는 한국 제품과 한국 문화를 선망했다.

K팝과 드라마는 중국 도시 청년들의 취향을 바꿨다. 한국 화장품과 패션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중산층 여성들의 지갑을 열었다. 한국 예능과 연예인은 중국 플랫폼과 방송가에서 중요한 콘텐츠 자산이었다. 당시 중국 미디어·문화 현장에서 활동했던 기자의 눈에도 한류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국 소비시장의 방향을 움직이는 하나의 문화 코드였다.

그러나 2026년 현재, 그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늘의 중국은 더 이상 한국을 뒤쫓는 추격자가 아니다. 반도체 범용 제품, 전기차 배터리, 신에너지차, 초고화질 디스플레이, 철강, 석유화학, 플랫폼 산업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한국의 주력 산업 전방위에서 가장 껄끄러운 경쟁자가 됐다. 어떤 분야에서는 이미 한국을 넘어섰고, 어떤 분야에서는 제3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과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산’이라는 이름값만으로 쉽게 돈을 벌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시장과 학계가 던지는 “한·중 관계가 다시 정상화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조금 다르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정상화가 2000년대의 밀월기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면,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사드(THAAD) 사태가 남긴 정치적 앙금, 팬데믹 기간 축적된 인적 교류의 단절, 미·중 패권 경쟁 속 공급망 재편,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의 빠른 기술 자립이 겹겹이 쌓였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감정적 화해가 아니다. 냉정한 현실에 기반한 ‘조건의 재설정’이다.

■ 2700억 달러의 역설… 멀어졌지만 여전히 묶여 있다

정치·외교적 외풍 속에서도 경제 지표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2024년 한·중 교역액은 약 2729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2015년 당시 교역액 2274억 달러와 비교하면 오히려 20% 가까이 커졌다. 양국 관계가 정치적으로 흔들리는 동안에도 산업과 무역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특히 2025년 1~11월 기준 양국 간 전기·기계류 교역액은 1조4300억 위안 규모로 전체 교역의 약 67%를 차지했다. 반도체, 전자부품, 기계, 장비, 소재가 얽힌 한·중 산업 구조가 여전히 깊게 연결돼 있다는 뜻이다.

숫자는 냉정하다.

한·중 관계는 감정적으로 멀어졌지만, 산업적으로는 여전히 깊숙이 묶여 있다.

문제는 교역의 규모가 아니다. 교역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한국이 고부가가치 중간재를 중국에 보내면, 중국은 이를 조립해 세계 시장으로 수출했다. 중국의 성장은 한국 수출기업에 기회였다. 중국 공장의 증설은 한국 부품업체와 장비업체의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중국 소비자의 소득 증가는 한국 화장품, 패션, 식품, 콘텐츠 기업의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중국은 중간재와 소재, 부품, 장비를 빠르게 내재화하고 있다. 이른바 ‘중국식 공급망 자립’이 속도를 내면서 한국 기업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과거 25% 안팎에서 2025년 18%대로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한국의 대중국 수입 비중은 2025년 기준 22% 안팎까지 올라갔다. 한국이 중국에 덜 팔고, 중국에서 더 많이 사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중 무역의 새로운 경고등이다.

한국관세신문

■  “Made in Korea만으로 팔리던 시대는 끝났다”

광저우에서 만난 한 한국계 무역업체 대표는 최근 중국 시장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는 바이어들이 ‘Made in Korea’라고 하면 먼저 관심을 보였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중국 제품의 품질이 턱밑까지 올라왔고, 일부 품목은 이미 한국 제품을 앞섰습니다. 가격 경쟁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독점적인 기술이나 분명한 브랜드 스토리가 없으면 중국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의 말은 현장의 분위기를 정확히 보여준다.

2000년대 중국은 한국을 배우려 했다.
2010년대 중국은 한국을 따라잡으려 했다.
2020년대 중국은 한국을 대체하려 한다.

기자가 광저우에서 18년을 살며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도 바로 이 지점이다. 중국은 단순한 생산기지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세계 제조업의 가격 기준을 만드는 나라가 됐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부품을 조달하던 시대를 넘어,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의 시장을 잠식하는 시대가 됐다.

이 변화는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화와 소비시장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난다.

사드 이후 불거진 한한령은 한국 콘텐츠의 공식적인 중국 진출 통로를 크게 좁혔다. 한국 드라마, 영화, 게임, 공연, 예능은 과거처럼 자유롭게 중국 시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한때 중국 방송가와 플랫폼을 흔들던 한국 콘텐츠의 존재감은 제도적 장벽 앞에서 크게 약해졌다.

그렇다고 한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국 젊은 층은 여전히 샤오홍슈(小紅書), 더우인(抖音), 빌리빌리, 웨이보 등을 통해 한국의 뷰티, 패션, 아이돌, 음식 문화를 소비한다. 다만 소비 방식이 바뀌었다. 과거처럼 방송과 플랫폼을 통해 대규모로 확산되던 한류는 이제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방식으로 이동했다.

공식 시장은 막혔지만, 취향의 시장은 남아 있다.
한한령은 끝났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중국 소비자의 한국 문화 소비도 끝나지 않았다.

이 모순이 오늘의 한·중 관계를 보여준다.

  무비자 훈풍… 그러나 관계 회복의 전부는 아니다

관광과 항공은 한·중 관계 회복의 가장 빠른 체감 지표다.

중국 정부는 한국인을 포함한 일부 국가 국민에 대한 무비자 입국 조치를 2026년 말까지 연장했다. 한국도 2025년 9월 29일부터 2026년 6월 30일까지 중국 단체관광객에 대한 한시적 무비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조심스럽지만, 경제적으로는 다시 사람을 오가게 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공항 입국장과 면세점, 명동과 제주, 부산의 관광 상권은 이 변화를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의 귀환은 단순한 여행 문제가 아니다. 항공, 숙박, 면세, 화장품, 식음료, 의료관광, 지역 상권까지 연결되는 경제 문제다.

한·중 관계 회복의 온기는 정상회담장보다 공항과 면세점 매출표에서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관광이 풀린다고 한·중 관계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안보의 축은 여전히 한·미 동맹에 놓여 있다. 미·중 기술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고,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 중국의 한반도 전략, 미국의 대중국 첨단기술 통제는 한국의 선택지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한국에 중국은 경제 파트너이지만, 안보 문제에서는 단순한 파트너가 아니다.

그래서 한·중 관계의 미래는 낙관도 비관도 아닌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다시 보는 중국

기자는 18년의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현재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한국 기업의 아세안 이전과 공급망 재편을 취재하고 있다. 베트남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공장은 베트남으로 옮겼지만, 원부자재와 설비는 여전히 중국산을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이 말은 ‘탈중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들은 인건비 상승, 미·중 갈등, 팬데믹 충격, 중국 내 규제 리스크를 피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멕시코 등으로 생산기지를 넓혀 왔다. 그러나 공장을 옮긴다고 공급망 전체가 함께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공장의 원부자재 상당수는 중국에서 들어온다. 설비도 중국산이 많다. 포장재, 부자재, 금형, 전자부품, 기초 소재의 가격 기준도 여전히 중국이 만든다. 생산의 외형은 아세안으로 이동했지만, 공급망의 상류는 여전히 중국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탈중국’은 구호로는 쉽다. 그러나 현장에서 완전한 탈중국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중국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공급망의 더 깊은 곳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결론: 중국과 친해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제 한국 경제에 필요한 태도는 막연한 낙관론도, 감정적 비관론도 아니다. 냉정한 실리주의다.

한·중 관계의 본질은 이제 ‘우호’의 영역에서 ‘관리’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구호가 아니라 숫자로 봐야 하고,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읽어야 한다. 정상화가 아니라 재계약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국은 중국을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중국에 다시 과도하게 의존할 수도 없다. 중국은 여전히 거대한 시장이지만, 동시에 한국 산업을 압박하는 거대한 경쟁자다. 중국 소비자는 여전히 한국 브랜드에 관심을 갖지만, 예전처럼 무조건 한국 제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중국 지방정부는 여전히 한국 투자와 교류를 원하지만, 중앙의 정치·안보 환경은 언제든 기업 활동을 흔들 수 있다.

우리는 중국의 어떤 기능을 활용하고, 어떤 의존은 줄일 것인지 다시 계산해야 한다. 어느 분야에서는 협력하고, 어느 분야에서는 경쟁하며, 어느 분야에서는 대체 공급망을 만들어야 할지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

2000년대 한국 기업은 중국 대륙에서 속도를 배웠다.
2026년 한국 기업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쟁자를 상대로 생존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한·중 관계는 다시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나 예전처럼 가까워질 수는 없다.

질문은 바뀌었다.

중국과 다시 친해질 것인가가 아니다.
중국과 어떤 거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다.

한국관세신문은 이번 기획 ‘한중관계 다시보기’를 통해 무역, 공급망, 반도체·배터리, 철강·석유화학, 소비재, 관광·항공, 문화콘텐츠, 지방정부와 상공회 네트워크를 차례로 짚어볼 예정이다. 외교적 수사보다 현장의 숫자와 기업의 판단을 보려 한다. 중국을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으려 한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외부 변수다.
동시에 가장 어려운 경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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